사라진 역사를 향한 집념의 질문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김정숙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1. 가야사의 연구 성과
고대인도 어디엔가 반드시 자신들이 살았던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문헌기록이 많지 않은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은 이 흔적을 찾아 고대사를 해명하는 고리로 거머쥐려는 간단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한국고대사의 한 부분을 이루는 가야는 서기 전후 변진(弁辰) 시대부터 562년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의 침입으로 멸망할 때까지 존속했다. 이들은 총 32개의 소국으로 서로 협조하거나 견제하는 동맹을 맺으며 살아 왔다. 그 지역은 경상남북도 서부지역이었는데, 때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었다. 그렇지만, 가야인들에 관해서는 고려시대에 쓰인<<가락국기>>라는 서류 분량 정도의 기록만 남아있다.
최근 김태식 교수는 1500여 년 전 한반도 남쪽 가야 땅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서를 저술했다. 저자는 1985년부터 가야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그에 앞서 한국사학계에서는 1970년대 이후부터 국가형성에 관한 연구가 쌓여가면서 가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문헌학과 고고학을 접목시키는 작업들이 나왔다. 이제 김교수는 현재까지 진행된 가야에 대한 연구업적을 총망라하여 전문인과 일반인이 다같이 읽을 전문서를 출간했다.
김태식 교수의 <<미완의 문명 700년 가야사>>는 가야시대사, 분류사, 각국사의 세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1권 시대사에서 가야사 연구를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우선 상이하게 불리던 이 나라에 관한 여러 명칭을 종합했을 때 가야(加耶)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김해의 가락국, 고령의 대가야만이 가야로 불리고 나머지는 소국의 이름을 쓰고 있었음을 밝혔다. 즉, 이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부르고 있는 것처럼, ‘○○가야’라고 불리지 않고, 각기 소국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그는 ‘6가야’란 기존의 통설은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설 때 그 지역사람들이 옛 땅의 이름을 내세워 부른 것에 지나지 않음을 고증했다. 그리고 ‘임나’(任那)는 오늘날 창녕지역의 지명인데, 때로는 금관국이나 그 연맹체를 일컫기도 했으며, 임나일본부의 실체는 무역주재기관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그는 ‘6가야’나 임나일본부가 모두 허구임을 설파했다.
김교수는 가야 멸망 이후 가야계 인물들의 동향을 밝히고자 했다. 그리하여 금관국 계통의 구형왕, 세종, 무력, 김서현, 김유신, 문명왕후, 강수의 활동을 검토했다. 대가야 계통의 우륵, 도설지왕, 순응, 이정 등의 삶의 여정을 밝혀 주었다. 특히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월광태자) 및 그 후손인 순응대사가 맺었던 월광사와 해인사에 얽힌 인연들을 찾아냈다. 그는 조선시대 읍지는 물론이며 때로는 현재의 자료까지 가야에 관련된 모든 사료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2권 분류사에서 김태식 교수는 가야의 정치체제, 즉 연맹체 조직과 그 운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야의 사회상을 자세히 설명하여 가야인의 생활을 실감나게 알려 주었다. 이 책이 내린 결론은 가야가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개별 소국들의 생산력이나 기술 수준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어 가야 소국들의 지명들을 고증하고, 가야의 영역을 밝혀 주었다. 역사서는 사건을 위주로 서술하지 사건이 일어난 땅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났던 위치를 찾는 일은 중요하며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그는 해냈다. 즉, 가야가 점유한 영역은 경상남도의 낙동강 유역과 그 서쪽 일대를 포함했고, 전라남북도, 동부지역을 포괄한 적도 있었음을 논증했다. 그리고 3권 가야 각국사에서 그는 32개 가야 소국들의 역사를 정리해 주었다.
또한, 이 책의 큰 장점은 전문가의 연구성과를 일반인과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편찬되었다는 점이다. 근래 역사의 대중화가 추진되면서 적지 않은 책들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때로 이른바 대중적 역사물들은 그 수준 자체에 문제가 많았고, 전문적 역사연구 성과를 왜곡하거나 도외시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야말로 전문연구자가 학계의 전문적 연구업적을 그 서술을 대중에 맞게 다시 시도한 작품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진만 한번 일별해도 가야사 전체를 파악하고, 당대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이 책을 편집했다. 저자는 직접 지도를 제작하여 그 많은 나라이름이나 지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 책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 및 자세한 색인표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서의 대중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공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2. 가야사에 관한 몇 가지 질문
전공자란 사건만 남은 한 줄의 기록에 시간과 공간의 볼륨을 찾아 부여하여, 그 사실을 눈앞에 살려내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자의 깊은 연구 위에 쉽게 풀어 쓴 이 책을 통하여 가야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 가야는 자신에 관한 역사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야사는 타인이 저들의 필요에 의해 쓴 기록을 위주로 복원되는 역사이다. 그 결과 저자는 가야의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적 요인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야의 역사가 거의 대외관계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듯한 서술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활용한 주요 사료들은 <<일본서기>>의 자료들이다. 따라서 가야가 당시 실재했던 것보다 왜나 백제와 더 가깝게 나타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본래 이 책의 장점이 문헌학과 고고학의 접목이다. 그런데 가야 땅 내부에서 출토된 고고유물은 가야인 스스로가 남긴 기록들이다. 따라서 이 유물들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생활사를 복원한다면, 가야 각국 내부에 작용하고 있던 역사변동의 원인을 또 다른 방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이 책에서 지명 비정에 사용한 음사(音似) 방법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리말은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19세기 발음도 오늘날의 발음하고 적지 않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고대의 지명은 한자로 씌어 있기 때문에 발음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대의 한국 지명들은 한자의 뜻을 얻어 쓴 것보다는 그 음을 나타내기 위해 글자만 빌려다 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위치를 비정할 때 사료에 옛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소리의 시간적 변화가 좀더 충분히 감안되어야 한다.
3) 고대사의 연구에서 고고학 자료를 활용할 때에도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전 지역을 발굴해 낸 다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분의 유물을 이용하여 고대사를 해석할 때는 한번 더 짚어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문헌을 통하여, 가야의 소국들은 서로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에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고분의 규모, 순장자, 부장품 등을 분석하여 이를 계층화시킨 기존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각 소국 세력의 차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저자는 5세기 고분과 6세기 고분을 정확히 구별치 않고 있다. 발굴의 성과는 시대를 감안하여 주목해야 한다. 즉, 당시는 사회발전이 한창 진행되던 과정이었으므로 비록 사회적 지위는 같다고 하더라도 1세기간에 고분의 부장품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또한 고분에는 생활유물이 그대로 부장되었다기 보다는, 그 부장품이 장례문화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듯하다.
한편, 이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에 있어서도 이 책에서 채택한 연구성과와는 다른 편년과 분포를 시도한 연구들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역에 관한 사실로 정치체가 같았다는 결론을 도출한 데에도 재고의 여지는 있다. 교역은 상품의 생산이나 그 생산을 규제하는 자연조건과 더 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4) 끝으로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은 가야연맹의 실체이다. 그들은 소국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공유요소가 있어 가야라고 같이 칭했겠는가? 이점은 가야가 망하고 300년도 더 지난 후, 고려가 성립할 때 그 소국이름에다 가야를 붙여서 칭하기를 원했다면 분명 더 강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자는 이를 정치 단위체가 같다는 사실로 설명했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진한과 변한은 귀신을 제사지내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대에서 종교는 곧 정치이데올로기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가야사의 해명을 위해서는 드 꿀랑주 등의 이론 및 인류학 이론을 좀더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구슬을 귀하게 여겼다는 사실도 이러한 이론과 연결하여 규명될 수 있다.
3. 글을 마치며
이러한 질문들을 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또 다른 길이 보일 수도 있다. 이 답은 우리 모두가 찾아야 하며, 어쩌면 이미 저자가 다시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본인이 간행한 책의 내용을 거듭 재검토할 만큼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곳에서 기왕에 자신이 내렸던 결론들을 검토하고 그 수정에 이미 동의한 바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내린 결론들은 고대를 향한 또 다른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들이 해결되면서 우리는 저자가 주장한대로 한국고대사의 전개과정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라는 4국시대로 선정할 것인가의 여부도 결정지을 수 있다. 그리고 당대와 가까운 김부식이나 일연은 왜 4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은 가야에 대한 직접 자료뿐 아니라, 당대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좀 더 천착된 연구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은 우리에게 가야사 연구의 현단계를 정확히 알려주었고, 가야사에 대해 종합적으로 질문하게 했다. 그리고 토론의 주제들을 짚어 내 주었다. 고유섭이 석탑을 많이 보지 못하고도 석탑의 양식 변화를 정확히 짚었던 것처럼, 이 책은 가야사의 방향을 올바로 짚어준 책이라 하겠다. (『서평문화』 46집, 2002,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