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기 高句麗와 加耶의 관계*
金 泰 植 (홍익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 머리말
2. 5세기 후반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
3. 6세기 중엽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
4. 맺음말
1. 머리말
고구려는 가야와 멀리 떨어진 나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는 동북아시아에 속하고 작게는 같은 한반도 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의 동향은 간접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가야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고구려가 313년과 314년에 걸쳐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킨 이후에는, 가야사도 고구려의 역사와 연동하며 움직였다.
그리하여 4세기 후반에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 다툼이 시작되어 신라는 고구려와 연결되고 가야는 백제와 연결된 이후, 가야는 고구려에 대한 간접적인 적국이 되었다. 그 결과 신라의 요청으로 400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이 보낸 군대가 가야연맹의 국읍인 任那加羅 또는 그 從拔城을 함락시킨 사건이, 김해의 가락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연맹과 고령의 대가야국을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연맹으로 나뉘는 가야사의 가장 큰 분수령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룬 논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광개토왕릉비문>>과 같은 일급 사료도 없고, 기타 고고학적인 유물자료 또는 문헌사료가 충분치 않은 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도 두 세력의 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료들을 모아보면 여러 가지로 고려할 부분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5~6세기의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를 검토하되, 문헌사료가 집중되어 있는 5세기 후반과 6세기 중엽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본격적인 문헌사료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5~6세기의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고구려계통 유물로 거론된 것들을 정리하면, (1) 부산 복천동 21*22호분 출토 도끼날 철촉과 마구, (2) 합천 옥전 23호분 출토 갑주, 마주, 마갑, 마구, 호록, 옥전 M2호분의 굴레연결부에 재갈쇠 멈춤띠가 부착된 판모양 재갈멈추개를 가진 재갈[入聞銜留鏡板비], (3) 창녕 교동 11호분 출토의 상감 명문 환두대도, 청동초두, 교동 7호분 출토 보주형 꼭지 청동합, 청동각배, 초두, 삼엽형 환두대도, 십자형 판모양 재갈멈추개를 가진 재갈[十字形鏡板비], (出字形金銅冠), (4) 의령 출토 延嘉七年銘 金銅佛(539년 樂浪東寺 제작), (5) 고령 고아동 고분의 뚫린 용무늬 안장가리개[龍文透彫鞍橋] 등이 있다.
(1)(2)(3)의 부산 복천동, 합천 옥전, 창녕 교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5세기 초부터 말까지 경주를 비롯한 신라문화권 속에서 나오는 고구려계통 문물이므로, 그 당시에 부산, 합천 동부, 창녕 등지가 대체로 신라문화권에 속해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 중에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합천 동부의 옥전 고분군 축조세력은 5세기 후반의 M3호분 당시부터 다시 대가야계통 문화권으로 편입되나, 부산과 창녕 지방은 그대로 신라문화권에 머무르다 독립적 정치세력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만다.
(4)의 의령 출토 연가7년명 금동불에 대해서는 후대의 우연적 출토유물로 보는 견해와 가야시대에 고구려에서 전래되어 사찰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보는 견해, 540년대의 고구려와 함안?의령 세력, 즉 안라국과의 직접적 교류를 반영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 유물은 고분 출토유물로 볼 수 없는 정황이 있기 때문에, 아직 그 성격을 확정하기 어렵다.
(5)의 고령 고아동 고분에서 나온 안장가리개는 고구려계통의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고아동 고분의 축조 방식을 포함한 유물의 전반적인 상황이 6세기 중엽 백제계통의 것이므로 백제를 통하여 대가야로 들어온 유물이거나, 혹은 대가야 왕실이 520년대에 신라와 결혼동맹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시기에 들어온 신라계통 유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물 상황을 통해서 볼 때, 5~6세기의 고구려와 가야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볼만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5세기의 가야지역에서 나온다는 일부 고구려 유물들도 김해의 가락국(금관가야)이나 고령의 대가야국과 같은 가야연맹 중심 세력이 아니라, 낙동강 동쪽이나 그에 인접한 일부 가야 소국들이 고구려 문물을 앞세운 신라의 정치문화권 아래 놓여 있었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6세기에는 고구려계통이라고 주장되는 유물들이 극소수 있기는 하나, 출토 상황이나 유물 상태가 좋지 않아 여러 가지 추론이 있고, 또 그 몇 점의 증거만으로는 당시에 가야가 고구려와 친밀하게 교류했는지 여부를 추론하기 어렵다.
4. 맺음말
고구려와 가야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대개 양자 사이에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관계가 없었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와 가야는 5세기 후반과 6세기 중엽의 두 차례에 걸친 한반도 전란기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쟁을 통해서 만났다. 게다가 그 중에 양자의 협력관계도 두 번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5세기 후반에 고구려가 백제의 漢城을 함락한 이후 남진 정책을 더욱 적극화하자 가야는 백제 및 신라와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고구려의 공격을 막는데 일조하였다. 고구려는 468년에 신라 북부 동해안 방면 悉直城(=筑足流城: 강원 삼척시)을 침범하기도 하고 481년에는 彌秩夫(경북 포항시 흥해읍)까지 쳐내려왔는데, 이때 가야는 군대를 파견하여 신라를 구원했고, 가야군에는 일부 왜인 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487년을 전후한 시기에 고구려와 가야 사이의 협력관계가 나타났다. 즉 가야군이 백제와 함께 충북지방의 爾林(=圓山城: 음성군 음성읍)과 帶山城(=道薩城: 괴산군 도안면)에서 고구려와 공방전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가야군은 오히려 고구려군과 내통하여 우군이었던 백제군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이 협력은 백제 중앙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530년대 이래 백제와 신라는 가야연맹의 흡수 통합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다가 결말을 보지 못한 상태에 있었고, 얼마 뒤인 6세기 중엽에 고구려가 자체 내분과 서북방 국경의 우려로 인하여 혼란스럽게 되자 이번에는 백제와 신라가 연합군을 구성하여 한강유역 공격을 모색하였다. 그야말로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급변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가야도 그러한 국제 환경의 변동에 따라 혼란스러운 외교를 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야연맹은 당시에 고령 大加耶國 중심의 일원적 권위가 훼손되어 남북으로 분열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540년대 이후 가야 북부의 대가야는 백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548년에 가야 남부의 安羅國은 倭系 관료를 내세워 독자적으로 고구려와 밀통하여 백제에의 공격을 종용하였다. 그에 따라 고구려는 獨山城(=馬津城: 충남 예산)을 침략하기도 하였으나, 신라의 개입으로 인하여 고구려는 안라인들에게 자신의 강한 힘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가야의 상황은 다시 돌변하여 550년경에 대가야와 안라가 함께 백제의 영향력 아래 연합되었고, 그로 인하여 551년에는 백제군과 함께 고구려의 남쪽 변경인 한강유역을 공격하여 성공했다.
5~6세기의 후기 가야연맹은 크게 보아 백제 및 신라와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고구려를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 연락망의 주축은 주로 백제가 맡고 있었다. 그러나 가야연맹 또는 그 일부 세력들은 백제가 흔들리는 정세를 맞이하게 되면 과감하게 그 형세를 깨고 고구려와 밀통하여 백제를 괴롭히곤 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증거에 의하면, 가야 일부 세력의 그러한 행동은 가야연맹 전체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야의 어떤 소국의 小君長으로서 백제의 지원군으로 나선 那奇他甲背의 판단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또는 安羅國과 같은 가야 남부지방 중추 세력의 단독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다만 전자의 경우에는 그 행동이 가야연맹 주도 세력의 작전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야연맹 소속 세력들의 일반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475년의 漢城 함락 이후에 손상된 백제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성격도 있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 행동이 후기 가야연맹에서 가장 우위에 있던 대가야국 및 기타 가야 소국들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6세기 중엽과 같은 한계 상황에서 가야연맹 전체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며, 이것은 곧 일원적 통치제도를 확립시키지 못한 가야연맹의 대외적 대처방식에서 노출되는 한계성이기도 하였다.
가야의 이러한 행동양식에는 한반도의 상황뿐만 아니라 왜를 포함한 국제 동향도 고려되었다고 보이나, 그 자체에 왜국의 영향력이 미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백제와 연합할까 또는 이를 배척하고 고구려와 연결할까 하는 선택은 전적으로 가야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편 고구려로서는 백제 및 신라의 연합전선에 의하여 고통을 받고 있었으므로 가야와의 연결이 매우 소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는 조그만 단서를 토대로 해서라도 가야와 연결을 맺고 싶어 했을 가능성이 높으나, 가야를 효과적으로 다루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볼 때,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는 한반도의 4국 전체가 얽히는 상쟁 속에서 대체로 백제와 신라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전개되었으나, 때로는 전쟁 상황 속에서 직접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번 공고한 협조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이는 두 국가의 영역이 인접해 있지 않고 백제 및 신라에 의하여 격절되어 있어서 상호간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에 그 근본 원인이 있는 듯하다. 다만 고구려에 대한 가야의 행동은 백제나 왜와 같은 주변 국가의 강압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