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의 加耶地域 關係史: 交涉과 征服

金 泰 植 (弘 益 大)

머리말


모든 일에는 順序와 過程이 있기 마련이어서, 이를 逆行하기는 매우 어렵다. 후술하듯이, 이미 완숙한 고대 왕권을 이루어 높은 통치 능력을 갖추고 있던 6세기의 백제도, 가야연맹 제국을 복속시키기 위해서 수십년 간에 걸쳐서 많은 힘을 기울이고 개별 소국들에 대하여 회유를 거듭하였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그보다 내재적 발전 정도가 낮은 4세기의 백제가 일거에 가야연맹을 군사 정벌하여 장기간에 걸쳐 군사 지배를 하였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本稿는 百濟史의 관점에서 이러한 선입견들을 불식시키고 順理的인 이해 기준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백제가 가야 지역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에 대한 연구는 千寬宇에 의하여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復元加耶史>라는 논문은, 고대에 倭國이 任那를 지배하였다는 이른바 '南韓經營論'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것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나, 가야사의 복원이라기보다 백제의 가야 征服史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리하여 369년부터 562년까지 백제가 가야 지역에 軍司令部를 설치하고 지속적으로 지배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1970년대 당시에 임나 문제에 대하여 우리 남한 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학설로 부각되어, 백제사의 중요성을 각계에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日本書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歷史地理의 기본인 지명 비정을 잘못한 것이 많아서, 그 결론을 유효한 것으로 정착시키지 못한 듯하다. 盧重國은 이 연구 결론에 대체로 찬성을 표시하면서도, 백제와 가야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은 언급을 자제하였다.

그 후 金鉉球는 천관우의 연구를 이어받으면서 <<일본서기>>를 좀더 정밀하게 이용하여, 倭國의 대외관계와 백제의 '任那府' 경영 문제를 재정리하였다. 여기서 백제 내의 倭人官僚 및 군사들을 傭兵과 같은 성격으로 인식한 것은 좋은 시각이었으며,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천관우의 지명 비정의 문제점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또한 가야 고고학 유물에 백제 문물의 영향력은 그다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해명하지 못하였다.

백제사의 관점에서 백제가 가야 지역을 포함한 남방으로 진출하는 과정을 정리한 것으로는 全榮來의 연구가 시초를 이루며, 자료의 종합 및 지리 고증이라는 측면에서 돋보이는 연구 성과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李道學은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백제의 초기 팽창 과정을 거시적인 국제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설명하였다. 본고도 이들의 연구에 영향을 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에서는 가야 지역 자체 세력들의 동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최근에 李永植은 筆者와 延敏洙 등의 가야사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이용하여, 백제가 가야 지역으로 진출해 들어간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 연구 성과는 <<日本書紀>>에 대한 이용 면에서 기존의 선행 연구에 비하여 우수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백제의 가야 지역 진출 과정이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 한다는 측면을 드러내 보여주지는 못한 듯하다.

원래 한 고대국가가 다른 지역으로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내부적인 체제 정비와 병행되거나 또는 그 직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백제의 내부 체제 정비가 어떤 경지에 달하였을 때 어떤 식의 영역 개척 방법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대상 지역에 있던 재지 세력의 정치 수준과 입지 조건에 따라서 진출의 방법이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가야는 중앙집권화에 실패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하였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끝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던 수준 높은 세력이었다. 그러므로 백제가 이 지역을 개척하는 것은 같은 시대라고 해도 다른 지역과 다른 방법을 취하였을 가능성도 유념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백제의 가야 지역 개척 과정을 교역 거점 개설, 부용화, 정복 전쟁의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보려고 한다.

맺음말


백제가 가야 지역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나갔는가 하는 문제는, 백제의 발전 과정과 지방제도, 가야 諸國의 정치 발전 형태 및 당시의 고구려, 신라, 왜, 중국을 포함한 국제 관계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 따라 본고에서 고찰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대에 백제는 중앙집권화를 완비하고 대외적인 팽창을 시작하여 전북 金堤-古阜線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전남 서해안의 해남·강진과 경남 김해·창원 지역에는 기존의 마한 및 가야 제국들과 협력하여 해당 지역에 백제의 對倭 교역 거점을 설치함으로써 신라에 대한 견제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4세기 말 5세기 초에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가야연맹의 중심지가 파괴됨으로써 백제는 경남 지역의 교역 거점을 상실하였다.

2) 5세기 전반에 백제는 전남 지역의 거점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대왜 교역을 이루었으며, 중엽 이후로는 섬진강 유역의 가야 세력들과의 협조 아래 좀더 활발한 교통이 가능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5세기 후반에 고구려에 의해 백제 수도 漢城이 함락되고, 가야 지역 교통의 중개를 맡았던 木滿致가 政爭에서 패배함으로써 백제-가야-왜의 교통로는 다시 두절되었다.

3) 5세기 말 6세기 초에 백제는 담魯制를 정비하여 전남 서부에 대한 영역화를 완료하고, 전남 동부와 전북 동부 일대를 경략하였다. 그러자 이 지역의 후기 가야연맹 소국들이 백제에게 귀속되었고, 이에 대해 대가야는 섬진강-소백산맥을 경계로 방어를 하며 반발하였다.

4) 530년대에 백제는 가야 지역 내의 분열을 틈타 乞탁城 및 久禮牟羅城(칠원)에 군대를 진주시켰으며, 方-郡-城體制를 마련하여 섬진강 유역 일대와 경남 서남부의 河東, 丹城, 宜寧 일대에 지방관을 설치하고 南方 久知下城(장성군 진원면)을 통해 이를 관할하였다.

5) 540년대에 백제는 나머지 가야 전역을 달래어 屬國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여 550년대 초에 이들을 附庸化시키는데 성공하였으나, 554년의 관산성 전투 패배와 562년의 가야연맹 몰락으로 이 지역을 모두 신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6) 백제는 중앙과 지방에 대한 제도를 재정비한 후에 7세기 초 이래로 정복 전쟁을 통하여 옛 가야 지역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신라와 지속적으로 전쟁을 치룬 결과 642년에는 옛 가야 지역을 모두 군사적으로 점령하였다.

7) 7세기 중엽에 백제는 낙동강 유역에서 신라와 공방전을 벌이면서 가야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으나, 660년에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가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그후 3년 뒤인 663년에 가야 지역에 대한 소유권은 다시 신라에게 귀속되었다.

그러므로 백제의 가야 지역 진출 관계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4-5세기에는 가야 세력과의 협력을 통해 교역 거점의 확보를 하고 있었으며, 6세기에는 일부 군사적 점령과 일부 타협에 의한 附庸化 정책을 추구하였으며, 이것이 모두 실패한 이후 7세기에는 신라와의 군사적 대결을 통해 이 지역을 정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백제의 이러한 정책들은 그들의 지방 제도 정비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면서 항상 거의 성공하였으나, 번번이 고구려 및 신라 등과의 경쟁에 져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단계적 과정들을 볼 때, 백제가 4세기부터 가야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였다는 일부 학설들은 백제사의 합리적 설명을 위해서도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