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대문명 개척자는 가야계 이주민

2차대전 패망직후 일본 역사학계에서 제기돼 한때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이란 것이 있다.

지난해 타계한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1949년 처음 발표한 뒤 1990년대까지 계속 수정, 보완해온 학설로 일본 고대국가를 건설한 천황족(天皇族)은 대륙 및 한반도 방면으로부터 4~5세기에 일본 열도로 정복해 들어간 기마민족이란 것이다.

그러나 에가미의 학설은 일본 고대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천황을 일본에 고유한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존재로 기록한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 학계 모두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최근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의 ‘마문화연구총서 Ⅶ’로 출간된 ‘한국의 기마민족론’은 지난 50여년간 에가미의 학설을 둘러싸고 전개된 한·일 학계의 논쟁을 정리하고 최근 가야지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을 공동집필한 가야사 전공의 김태식 홍익대 교수와 고고학자인 송계현 부산복천박물관장은 5세기 고대 일본 열도의 급격한 발전을 외부침입자인 기마민족의 정복 탓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에가미가 ‘기마민족’이라고 언급했던 당시 일본 고대문명 개척자들의 실체는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에서 김 교수와 송 관장이 제시하는 5~6세기 일본 고대 문명 발전의 주역은 4세기 말부터 5세기에 걸쳐 가야 지역에서 원조공인(援助工人) 또는 유망민(流亡民)의 형태로 일본 열도로 대규모로 건너간 가야계 일본이주민이다.

이중 원조공인은 4세기 후반과 5세기 후반 각각 가야지역의 맹주였던 금관가야 및 대가야 왕권이 일본 열도로부터 왜인용병 등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보낸 것이며, 유망민은 5세기 초 전·후기 가야 전환기에 발생했다. 물론 가야에는 4세기 서북지역으로부터 기마문화가 도입돼 있었다.

그러나 가야와 왜 사이의 관계가 상호 이익을 위한 대등한 교류에 기반하고 있었고 당시 가야를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이같은 사태가 초래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실체를 야마토 정권의 임나 지배의 결과인 ‘귀화인(歸化人)’으로 보거나 ‘기마정복민’, 또는 단순 도래인(渡來人)으로 이해해온 기존의 견해 모두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