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加耶 世系와 道設智

金 泰 植 (홍 익 대)


머리말

한 왕조가 外侵으로 인하여 멸망에 직면하였을 때, 끝까지 싸울 것인가, 아니면 투항할 것인가의 결정은 결국 그 마지막 왕의 손에 달려 있다. 선택 여하에 따라 결과는 달리 나타난다. 가야연맹제국의 대표적인 두 나라인 金官國과 大加耶國은 兩者의 선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전기가야연맹의 맹주였다가 약화된 금관국의 마지막 왕 仇衡王(=仇亥王)이 일찌감치 신라에 투항한 이후, 그 자손들은 신라 왕실 속에서 번성하였으며, 世系도 비교적 분명한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후기가야연맹의 맹주였던 대가야는 끝까지 신라에게 대항하다 정복당하였기 때문에, 世系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 마지막 왕은 이름이 道設智王이었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각 군현에 대한 기록 중에 유독 金海小京과 高靈郡의 前身인 금관국과 대가야국에 대해서만 간략하나마 왕의 세계가 수록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편 오래 전에 발견된 新羅碑인 창녕 진흥왕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에는 여러 신라 인명이 열거되고 있는데, 그 중에 都設智 또는 도(道+口)設智가 있다. 이 사람을 대가야의 마지막 왕 道設智와 비교해 볼 수 있을까? 借字 표기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동시기에 존재한 사람으로서 이름이 이토록 같다는 것에 대해서 간단히 우연의 일치라고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적어도 동일인 여부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신라의 마지막 태자로서 나라가 고려에 투항하는 것을 홀로 반대하다가 皆骨山으로 유랑 길을 떠났던 麻衣太子처럼, 대가야에도 호칭 상으로 보아 그와 같은 인상을 풍기는 月光太子가 있다. 만일 그가 왕이 되지 못한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였다면, 그와 道設智王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게다가 이번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월광태자라는 이름은 佛經에 나오고 있는데 대가야는 왕자 이름에 불교 용어를 쓸 정도로 불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와 같은 의문이 대가야의 역사 전개를 해석하는 데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것은 아니나, 가야사의 문헌 고증에 끝까지 철저를 기하여,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돌이켜보면 대가야국 왕의 세대수를 포함한 계보에 대해서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의 연구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자료 자체의 편찬 시기 및 신빙성 검토뿐만 아니라 人名들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천착도 부족하였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대가야의 세계에 대한 지엽적인 기록들을 종합하여 가능한 한도 내에서 복원을 시도하고, 월광태자나 단양비 적성비의 도설지가 대가야 마지막 왕이었을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 즉 그의 신원과 행적을 확인하고자 한다.

맺음말

대가야 왕들의 세계에 대한 본고의 요지를, 그 결론만 간략하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여러 소국들이 신라에게 병합되어 군현으로 편제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나, 그 중에서도 소국 당시의 왕 世系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김해 금관국과 고령 대가야국의 둘밖에 없다. 고령 대가야국에 대한 기술 중에 국명을 '가야국'이 아닌 '대가야국'으로 한 것과 시조부터 마지막 왕까지의 세대수를 8-9세대가 아닌 16세대로 한 것 등은, 신라 통일기를 전후한 시기에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가야의 王系와 마지막 왕 道設智의 이름이 지리지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그 후손들이 후대까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령현 조에 인용된 <<석순응전>>과 <<석이정전>>에 의하면, 大加耶王 惱窒朱日과 金官國王 惱窒靑裔가 형제 사이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시조신화는 7세기 후반 이후 또는 최치원에 의한 조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5세기 후반의 대가야 중심 후기가야연맹의 발족 당시에 구성된 것이다. 다만 金官國이라는 표기만은 7세기 후반 이후의 표기법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셋째로, 正見母主라는 이름은 불교 수행방법인 八正道에서 따온 것이고, 月光太子라는 이름은 석가모니가 前生에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 두 이름은 9세기초 해인사 성립 당시에 부가된 이름이 아니라, 대가야가 6세기 전반 내지 중엽에 신라와의 결혼동맹과 관련하여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취하게 된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훗날 해인사의 설립자인 順應과 利貞은 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서 이 설화를 이용하여 옛 가야지역에서 불교를 진흥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넷째로, 대가야의 世系는 가야산신 正見母主가 천신 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낳은 伊珍阿시(豆+支, 메주 시)王을 시조로 하고 있다. 정견모주와 이진아시왕에 대한 제사는 신라의 祀典 체계 안에서도 그대로 인정되어, 加良岳(小祀)과 推心(中祀)에 대한 제사는 고령 지역 사람들에 의하여 대대로 이어졌다. 錦林王은 시조의 3-4세손으로서 5세기초에 伴跛國의 國邑 세력을 누르고 고령읍 중심의 왕권을 창출한 인물로 추정된다. 嘉悉王은 시조의 6-7세손으로서, 5세기 후반에 10여 국을 망라하는 후기가야연맹을 형성시킨 사람이며, 南齊에 조공한 荷知王과 동일인이다. 異腦王은 시조의 8세손으로 신라와 결혼 동맹을 이루었던 왕이며, 그와 신라인 왕비 사이에 月光太子가 태어났다. <<日本書紀>>에 나오는 阿利斯等과 任那王 己能末多干岐를 금관국 仇衡王이나 대가야 異腦王과 동일시하는 연구가 많이 있으나, 그 견해들은 타당치 않다.

다섯째로, 550년경의 赤城碑에 나오는 도(道+口, 말할 도)設智와 561년의 昌寧碑에 나오는 都設智는 대가야 마지막 왕인 道設智王과 동일인이다. 도설지는 540년 내지 550년 사이에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귀족 사회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에 의해 격파된 후 그들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하여 대가야로 파견되어, 신라의 꼭두각시 왕으로 즉위하였다. 도설지는 脫知爾叱今 및 月光太子와 동일인이며, 그가 신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하여 대가야의 왕이 될 때, 그는 자신이 이뇌왕의 '太子'로서 진정한 왕위 계승자라는 명분을 세웠다. 그는 얼마 안있어 신라의 지시에 따라 村主로 격하되거나 또는 은퇴하였을 것이다. 그 후손들은 월광태자=도설지왕의 후손임을 내세워 고령 지역의 지배권을 유지해 나갔고, 순응과 이정은 그 후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