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시대를 제창하며 다시 쓴 한국고대사 3부작
삼국시대에서 사국시대로의 기나긴 여정
흔히 한국 고대 시기는 삼국시대였다고 알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 정치가요 사학자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통하여 알려져 왔다. 그의 삼국시대 인식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들의 생각을 계승한 것이다. 그 책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을 고구려*신라*백제와 동일시하고 고조선이나 가야, 발해의 역사를 무시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는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먼저 건국됨으로써 시작하였다고 이해하였다.
그릇된 역사인식에는 시련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고려시대에 무신정권이 들어선 뒤 각 지방에서는 민란이 일어났고 그들은 백제나 신라의 복구를 표방하곤 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몽고가 쳐들어오자 그들은 하나로 뭉쳐 대항하기 어려웠다. 당시의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삼국 이전에 ‘고조선’이 있었음을 밝혀내고, 가야나 발해도 우리 역사임을 덧붙였다. 이런 역사인식을 이어받아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의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에 따라 한국사는 고조선-삼한-삼국-고려-조선으로 이해되었으나 가야와 발해는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런 잘못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승리한 원인은 명나라 원병, 의병, 이순신 수군의 활약에 있었고 결국 의병장을 많이 배출한 경남 지역의 정치가들이 정권을 잡았다. 그들은 스스로 가야의 후예였음을 알고 있었으나 자신들의 역사는 그동안 한국사에 반영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백겸은 <<동국지리지>>에서 삼한의 하나인 변한은 가야로 계승 발전되었으며, 고구려는 북한 서부 지역의 낙랑군을 병합한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사는 고조선-낙랑/삼한-사국(삼국/가야)-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변천했다고 수정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는 만주 여진족의 침략을 받아 병자호란을 겪고 크게 시달렸으며, 그들은 중국의 명나라를 제압하고 청을 건국하였다. 자존심이 상한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은 고조선 및 고구려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요동을 포함한 만주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일깨웠다. 특히 유득공은 <<발해고>>를 저술하여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한국의 역사라고 밝혔다. 이런 역사인식에 대하여 안정복, 정약용, 김정호 등의 학자들이 인정하면서 우리 역사는 고조선-낙랑/삼한-사국-남북국(통일신라/발해)-고려-조선으로 재정립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일본인들이 한국사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야는 일본이 지배하던 ‘임나’였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 들어와 가야사의 이해가 다시 왜곡되었다.
그 후 광복 이후에도 임나 문제로 인하여 가야가 소외되다가, 1980년대 이후 경남 지역의 유적 발굴 성과에 발맞추어 가야사 연구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도달하였던 역사인식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2012년에 교육부에서 확정 고시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보면 고대사 분야가 ① 선사 문화, ② 고조선과 여러 나라, ③ 삼국 및 가야, ④ 통일신라와 발해, ⑤ 고대국가의 사상과 문화라는 다섯 장으로 분류되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장절 제목에서부터 제3장이 사국시대로 되고 제4장이 남북국시대로 되어야 하나, 현재 상태는 그렇지 못하다.
사실 사국시대라는 용어를 채택하기에는 현실적 문제점도 없지 않다.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한 ‘동북공정’에서 고구려를 자기 역사 안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고구려를 ‘삼국’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는 한국 고대사에 속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서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함부로 바꾸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근본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는 고대 한국이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였다고 체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피할까, 맞설까,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1.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
제1권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는 크게 보아 가야사를 포함시켰을 때 한국고대사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한국고대사에서 가야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는 매우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들을 논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괄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하여 가야가 고대국가에 속하는가 하는 의문을 내는 분들이 많으나, 여기서는 가야가 고대국가로서 성립하였으나 완성된 체제를 갖추지는 못하였다는 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고대 시기의 대외교역에서 가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고구려 전성기에 가야를 포함한 사국의 국경선을 그려보았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하여 우선 식민사관을 포함하여 가야사를 경시하는 여러 논리들을 비판하였으며, 백과사전 속에서 가야는 어떻게 제시되고 있는가의 현황을 제시하여 가야사의 통설적 기준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에 이어 가야 문화의 특징과 그 근거 자료들에 대하여 서술하고, 가야사에 대한 연구사와 주요 사적들을 설명하였다.
2. 사국시대의 한일관계사 연구
고대 한일관계사는 식민사관의 일종인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에 휘말려 제대로 된 이해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야의 독립성을 염두에 두고 논한다면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제2권 사국시대의 한일관계사 연구의 앞부분에서는 사국시대의 한일관계사에 대한 기존의 연구 동향을 임나일본부설, 임나 문제, 고대 한일관계사라는 세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 문제는 일본역사교과서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일부 포함시켜 설명하였다. 또한 일본에서 대방군의 위치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정리하고 비판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에서 고대 일본이 가야를 지배하던 시기라는 4~6세기의 한일관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였다. 고고학 자료, 금석문, <<일본서기>>를 포함한 문헌 자료들을 분석하여, 가야는 문화 수준, 제철 능력, 무기의 살상력, 갑옷 및 마구의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일본열도보다 전반적으로 우월하였음을 보였다. 6세기 중엽 이후로는 한일관계의 중점이 백제의 고급문화로 이동한다.
3. 사국시대의 사국관계사 연구
그동안 가야사 연구의 미비로 인하여, 한국 고대 사국은 서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논의되어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가야와 삼국 사이의 관계를 하나씩 분리하여 생각해 보았다.
제3권 사국시대의 사국관계사 연구에서 가야와 고구려의 관계는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400년의 왜군 토벌과 임나가라 정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가야와 백제의 관계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조에 나오는 왜군의 가야 7국 정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며, 이는 칠지도의 해석과도 결합되어 있다.
가야와 신라의 관계에서는 포상팔국 전쟁에서 신라가 그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기록과 4세기 이전 신라와 가야의 문화 수준 등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대가야 마지막 시기에 부각되는 인물인 도설지와 우륵의 문제도 중요하다. 또한 가야와 낙랑, 가야와 중국 남제 사이의 관계도 검토하였다. 끝으로 가야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하여 해상 교류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므로 이를 각종 설화나 고고학적 유물을 통하여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