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를 내고 벌써 12년이 흘렀다.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책을 발간하게 되니 기쁘기 그지없다. 모든 글들은 한국사 전체의 구도 속에서 가야사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혹은 이른바 ‘임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한일관계사를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또는 한반도의 삼국과 가야 사이에는 어떤 관계를 보였는가 하는 세 가지 주제로 귀결되었다.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결국 책을 세 권으로 나누고, 이 책에는 가야사와 직접 관련된 글만을 묶게 되었다.

대부분의 글들이 누군가의 요청으로 집필하게 되다 보니 개괄적이고 가야사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지견을 뒤에 두고 결론만 제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서로 중복되는 경우도 있고 약간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원래 원고의 뜻을 중시한다는 생각에서 최소한의 내용만을 고쳐서 출간하기로 하였다.

‘사국시대’라는 말은 1990년대에 일부 논객들이 쓰기 시작하곤 하였으나 2001년에 필자가 학술회의 공식 석상에서 발표한 이후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한국 고대사의 중심 시기를 삼국시대가 아닌 사국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어 가야를 포함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필자가 이를 감히 주장하게 된 것은, 문헌 검토를 통하여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삼국’에서 ‘사국’으로의 인식 변화를 보고, 고고학적인 문화 유물 속에서 가야 문화의 지속적 독자성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국시대라는 용어를 채택하기에는 현실적 문제점도 없지 않다. 즉 2002년부터 추진된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서 압록강 이북에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던 고구려를 중국 역사 안에 포함시키려는 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로 보아, 한국에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고구려를 삼국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는 한국 고대사에 속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래서 삼국시대라는 용어를 함부로 바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식민사관에서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통하여 경남 일원의 한반도 일대를 200년에 걸쳐 일본이 지배하였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근래에 들어 일본에서도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많지만, 일부 개설서나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이를 사실인양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 그 시기의 한국은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였다고 체계화시켜 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인하여 2012년 이후의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장/절 제목에서 ‘삼국’이나 ‘사국’을 지양하고 ‘삼국과 가야’라는 병렬적 칭호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위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내용이나 분량을 들여다보면 역시 가야를 포함한 사국을 거의 동등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사국시대’ 개념의 우월성을 좀 더 본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본서에서는 제목에 ‘사국시대’를 포함시켰다.

그동안 쓴 글들을 다시 정리하다보니 가야사 전체 구도에서 2002년에 책을 냈을 때와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게 있었다. 우선 전남 동부 지역과 경남 하동 일대가 한동안 가야 문화권에 속하였다는 필자의 주장을 증명할 몇 가지 고고학 조사 결과가 나와 그것을 추가하였다. 그것은 2006년에 발견된 전남 순천 운평리 고분군과 2010년에 발견된 경남 하동 흥룡리 고분군이다. 그 결과 이른바 ‘임나 4현’과 기문/대사에 대한 문헌적 지명 고증이 옳았다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는 고령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후기 가야연맹의 성립 시기를 5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엽으로 약간 소급하게 되었다. 이는 <<송서>> 왜인전에 나오는 왜 5왕의 작호에서 ‘가라’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용현 선생의 견해를 수용하고, <<일본서기>> 신공황후 섭정 62년(262) 조 기사를 3주갑 내려서 442년의 사실로 보아야 한다는 야마오 유키히사[山尾幸久] 선생의 견해를 인정한 결과이다. 다만 신공기 62년 조 기사의 내용은 왜의 가야 공격 및 백제의 가라 구원이 아니라, 고령의 반파국이 목라근자의 중개를 계기로 백제와 연결되어 동맹을 맺은 것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반파국의 지배자가 가야연맹 전체의 지배자라는 뜻으로 ‘가라국왕’을 자칭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는 <<사국시대의 사국관계사 연구>>에 실린 논문 <도설지를 통해 본 신라와 대가야>에 상세하게 추가해 넣었다.

셋째로, <<일본서기>> 현종천황 3년(487) 조에 나오는 지명 ‘爾林’의 위치에 대하여 충남 예산군 대흥면으로 보았던 것을 충북 음성군 음성읍으로 수정하고, 이를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26년(서기 8) 조의 圓山城과 같은 곳으로 추정하였다. 사실 이림은 <<일본서기>>의 한반도 관련 기사 중에 응신/현종/흠명기의 세 군데나 나오는 중요한 곳이었으나, 그 위치 비정은 여러 학자들의 고증에도 불구하고 모호하였다. 지난 2006년에 필자가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고증한 이림=음성설은 이제 확실한 결론을 보았다고 자부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는 <<사국시대의 사국관계사 연구>>에 실린 논문 <5~6세기 고구려와 가야의 관계>에서 추론한 바 있다.

넷째로, 고령에 전해 오는 ‘금림왕릉’의 주인을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의 3~4세손으로서 5세기 전반의 왕으로 보았던 것을 취소하고 6세지 전반 이뇌왕 또는 그보다 한 세대 위의 인물로 수정하였다. 이는 1939년에 발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물을 확인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2002년에 후지이 가즈오[藤井和夫] 선생이 그 자료를 찾아서 보고하고 이를 2012년에 소개한 조영현 선생의 글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수정한 부분들이 더러 있으나 발간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생략한다.

2014년 2월

와우산 기슭의 연구실에서 생각을 가다듬어

저자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