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문제에 대한 諸 학설과 안라왜신관
김 태 식 (홍익대)
Ⅰ. 사료의 소재
고대 한일관계사의 연구 중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른바 '任那日本府'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과 일본 두 민족의 자기중심적 조망 때문에 객관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인 加耶의 역사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아 더욱 풀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옛날 언젠가 神功皇后가 80척의 배를 거느리고 삼한을 정벌하였다는 전설이 고대 이래로 전해져 왔다. 이러한 전설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일본 고대의 兩大 사서인 <<日本書紀>>와 <<古事記>>에도 수록되어 있다. 게다가 <<일본서기>>에는 한반도의 任那에 '日本府'라는 것이 존재하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관료들의 이름 및 활동 상황을 전하고 있다.
한편 우리 나라의 사서인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는 그러한 사실을 전하는 사료가 하나도 없으며, <<삼국사기>>에 신라가 왜인이 침입해 온 것을 쳐서 쫓아냈다는 기사가 25회 정도 나올 뿐이다. 다만 <<삼국사기>> 强首列傳에 태종무열왕 때의 문장가였던 강수가 '본래 任那加良人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창원에 있었던 <鳳林寺眞鏡大師塔碑文>(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재)에는 신라 말의 선승인 審希가 본래 任那王族이었다고 하였으며, <廣開土王陵碑文> 영락 10년(400) 조에 任那加羅라는 국명이 나온다.
그런데 '임나'라는 말이 <<일본서기>>에는 215회나 나오며, 관계 기사도 <<삼국사기>>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5회 나오고 '일본부'라고만 되어 있는 것도 같은 책에만 30회 나오는데, 그것도 그 안에 인용된 <<百濟本記>>와 관련하여 欽明紀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 사료가 완전히 가공의 상태에서 날조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일정한 사료 분석의 방법을 거쳐서라도 그에 대한 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얼마 안 되는 관계 기사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각 연구자들은 엄청난 시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우선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존 설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Ⅱ. 1960년대 이전의 기존 학설
19세기말 이래의 근대적인 역사지리 연구 성과들에 대부분 의존하면서 末松保和는 앞에 설명한 광개토왕릉비문의 기사를 비롯하여 <<일본서기>>와 <<宋書>> 倭人傳 등의 임나 관계 문헌사료들을 정리하여 학문적 체계를 갖춘 이른바 '남한경영론' 즉 임나일본부설을 완성시켰다. 그 요지는 왜가 신공황후 섭정 49년(369)에 가야 지역을 군사 정벌하여 그 지배 아래 임나를 성립시킨 이후, 4세기 말 5세기초에는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둘러싸고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대결을 벌이고, 5세기에는 왜의 한반도 남부 영유를 중국 남조의 宋에게 인정받는 등, 임나일본부를 중심으로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다가, 흠명천황 23년(562)에 이를 신라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이미 일제의 한국 식민 통치 기간에 일본사 교과서, 사전류, 및 그에 대한 英譯版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패전 직후 江上波夫는 일본고고학의 성과들을 종합하여 한일관계사에 응용함으로써, 거시적인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을 발표하였다. 동북아시아계통의 기마민족이 한동안 남한을 지배하다가 辰王의 자손이 4세기초에 일본 북구주로 건너가 倭韓 연합 왕조를 건국하고 崇神天皇이 되었으며, 5세기초에는 그의 자손인 應神天皇이 북구주에서 畿內로 진출하여 大和 왕조를 창시한 후, 일본열도를 통합하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다가, 7세기 중엽 이후 손을 뗐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북한의 金錫亨은 <<일본서기>>와 일본고고학 자료들을 가지고 일본열도 내에서의 상황을 중심으로 한 고대 한일관계사 영역을 개척하여 이른바 '分國說'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4∼5세기의 일본 고분 문화는 백제ㅗ가야 등 한반도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이루어졌고 그 주체 세력들은 모두 한국계통 소국 즉 분국이었으며, <<일본서기>>에 나오는 모든 한반도 관계 기사는 일본열도 내부의 한국계통 소국들 사이의 일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열되어 있던 일본은 6세기초부터 백제계통의 소국으로 보이는 야마토 정권에 의하여 통일되기 시작하는데, 任那日本府는 그 시기에 야마토의 왜왕권이 吉備 지방의 임나소국에 설치한 지배기관이었다고 보았다.
Ⅲ. 1970년대 이후의 연구 동향
이런 연구들에 자극을 받은 일본 학계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 기존의 남한경영설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그리하여 井上秀雄은 <<일본서기>>의 사료 계통의 原典을 추출해내어 분석하는 방법론을 써서 좀더 객관적인 연구를 시도하였다. 그에 따르면 <광개토왕비문>의 왜군이나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 관계 기사들은, 왜인을 자칭하는 임나의 한 토착 세력이 일본의 중앙귀족이나 지방호족과 관계를 가진 것에 의하여 그 세력을 확대하려고 한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학자들의 연구 중에서 임나일본부설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연구 성과가 나타났으니, 千寬宇 선생의 백제군사령부설이 그것이다. 즉 4세기 중엽에 백제의 근초고왕이 가야제국을 군사 정벌하여 백제권에 편입시킨 이후 6세기 중엽까지 이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임나일본부'란 곧 백제가 가야 지역에 파견한 군대의 사령부였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1980년 및 90년대에 걸쳐 개별 논문들의 형태로서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연구들처럼 선풍적인 주목을 끌지는 못한 것들이었지만, 이들을 검토해 볼 때 임나일본부 문제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로, 아직 왜의 군사 침략 및 지배라는 측면을 고수하고 있는 연구도 있으나, 예전과 같이 369년부터 562년까지의 장기에 걸친 임나 지배를 주장하는 이는 없고, 그 시기와 폭을 축소하는 경향이다. 山尾幸久는 임나의 성립 시기를 429년으로 늦춰 보았으며, 請田正幸·大山誠一·鈴木英夫는 그 성립 시기를 530년경으로 늦춰 보았다.
두 번째로, 임나일본부의 성립 배경에서 군사 침략이나 무력 지배의 측면을 아예 배제하고 외교 官人 또는 交易의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야와 왜 사이의 상업적 교역을 중시한 교역기관설 (李丙燾, 吉田晶, 李根雨, 筆者)과 가야와 왜 사이의 정치적 외교 교섭을 중시한 외교기관설 (請田正幸, 鬼頭淸明, 奧田尙, 李永植, 延敏洙, 筆者)이 있으며, 이들 중에 일부는 가야의 교섭 대상인 '倭'를 야마도 세력이 아닌 별개의 倭 또는 특히 九州의 倭로 인정하기도 하였다(鬼頭, 李根雨).
세 번째로,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검토할 때 왜보다도 백제의 영향력을 보다 중시하고 가야의 입장을 중시하는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金鉉球는 임나일본부의 설치 주체를 백제로 보면서 거기에 일본인 傭兵이 고용되어 있었다고 보았으며, 李永植, 白承忠, 田中俊明과 筆者 등은 가야인들의 대응과 관련하여 임나일본부의 존재 의미를 완화하였다.
Ⅳ. 鈴木英夫의 최신설 비판
이 문제에 관한 일본의 최신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96년에 발표된 鈴木英夫의 저서 <<古代의 倭國과 朝鮮諸國>>(靑木書店刊)이다.
그 설명에 따르면, 6세기 전반에 왜왕권은 한반도의 금속·문물을 수입하는 대신에 백제에의 병사 파견, 무기 공급과 같은 군사력을 제공하였으나, 이를 백제의 '傭兵'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당시 백제와 왜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자립한 왕권 사이의 동맹 관계이나, 백제가 왜왕에게 볼모를 보내고 왜군의 파견을 구한 시기의 관계는 왜국을 主, 백제를 從으로 하는 '從屬的 同盟' 관계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安羅에 있었던 '임나일본부' 즉 왜왕이 파견한 군사력을 가진 '諸倭臣'은 왜왕의 통제 아래 있었고, 왜왕권이 안라의 군사·외교에 관여한 형적이 있으므로, 왜왕권와 안라의 관계는 '종속적 동맹'에서 進一步한 종속 형태라고 하였다.
결론의 내용은 30여 년 동안 백제와 안라가 왜국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든 근거는, 왜왕권의 군대가 안라에서 1년간 자립적인 활동을 하였다는 불확실하고 미약한 증거와, 왜국에 거주하던 백제의 고위 귀족을 <<日本書紀>>에서 종종 '質'로 기록한 常套的 표현뿐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그의 결론은 객관적 사실성을 결여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하튼 이른바 '南韓經營論'의 근거가 된다는 왜군의 가야에 대한 군사 행위의 시기를 369년에서 530년으로 늦추고, 그 행위의 성격도 군사 정벌이 아닌 군사 원조와 같은 형태로 파악하였다는 점에 그의 연구의 특징이 있다고 하겠다. 이는 기간을 짧게 잡았다고는 해도 군사력을 매개로 한 지배 형태를 상정하고 그 범위를 백제까지로 확대하여 보았다는 점에서, 이를 부정하던 근래 한일간의 연구 추세를 일부 逆行한 면이 있다고 하겠다.
Ⅴ. 加耶史 속의 安羅倭臣館
지금까지 임나 문제에 대한 연구 동향을 검토해 보았다. 문제의 초점은 한반도 낙동강 유역에 왜인들이 언제 어떻게 들어와서 무슨 활동을 하였으며 그들의 성격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加耶라는 독립적 정치체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어떤 단안을 내린다면, 그리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고대사 연구의 큰 매력 중의 하나는, 관계 사료가 부족해서 그 빈 공간을 연구자가 주관적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 유물로 보아, 가야 지역은 기원전 1세기에 철기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이래 기원후 6세기 중엽의 멸망할 때까지 묘제나 토기 등의 문화가 前 시대의 것을 계승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 및 왜와 상당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문헌 사료만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일본이나 백제가 가야를 200여 년간 통치하였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문헌에 나오는 임나일본부는 가야 문화의 독자성을 배경으로 삼아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광개토왕릉비문의 신묘년 기사는 매우 불분명한 것이어서, 이것이 왜의 임나 지배에 대한 증빙 자료로 활용될 수 없다. 근래의 연구 동향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관련 기사를 토대로 임나의 성립을 말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백제본기>>가 인용된 6세기 전반의 기사들을 통해 '임나일본부'라는 기구가 가야연맹의 강국 중 하나였던 안라국(安羅國: 지금 경남 함안)에 있었다는 것은 인정된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사료를 통해서 볼 때, 신라나 백제로 가는 왜국 사신이 가야의 해안에 닿자 임나일본부의 관리들이 마중 나가 그 국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데, 왜의 사신들은 신라왕 또는 백제왕에게 가서 들으라면서 배척하고 있다. 임나일본부가 남한 경영을 위한 왜의 파견기관이거나 왜왕의 견해를 전달하는 사신들의 객관이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왜인 계통의 인물들이었지만, 안라를 비롯한 가야연맹을 위하여 일하고 있었다.
사료에 즉하여 이를 다시 해석해 볼 때,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530년대 후반에 백제가 자기 영향권 아래 있던 安羅에 親百濟 倭人官僚를 파견하여 설치한 기구로서, 외형상으로는 倭國使節 駐在館의 명분을 지니나 실제로는 對倭 교역로를 확보하고 신라와의 마찰을 피하면서 가야 지역의 동향을 감시하는 기구, 즉 백제의 대왜 무역 중개소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久禮山城(칠원)에 군사해 있던 백제의 군대가 卓淳國(창원)의 신라 투항과 함께 신라군에게 쫓겨나자, 安羅國(함안)은 그 혼란을 틈타서 자기 지역 내의 '일본부'를 장악하고 親安羅 倭人官僚들로 재편하여 자신들의 외교를 지원하는 기구로 활용하였다. 그 후의 '일본부'란 안라의 특수 외무 관서와 같은 성격으로 변하였고, 따라서 사료 상에 나오는 '일본부'의 관리들은 가야연맹체, 그 중에서도 특히 안라국을 위해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日本'이라는 국명은 7세기 중엽 이후에 성립된 것이므로 6세기 전반에 '日本府'라는 명칭은 있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왜의 임나 지배'라는 선입견이 들어있는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폐기하고, 앞으로는 '안라에 있던 안라의 왜인 신하들이 일을 보던 곳'이라는 관점에서 '安羅倭臣館'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안라왜신관은 가야연맹이 소국 연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주위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인 신라와 백제의 복속 압력을 받고 있던 멸망 직전의 시기에, 가야연맹의 제2인자였던 안라국이 자신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를 도모하기 위해 운영하였던 한시적인 기구였다. 그래서 안라는 백제의 억압을 외교적으로 막아내기 위해 안라왜신관을 활용하여 왜국의 정치적 의사 결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내서 백제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550년을 전후하여 이 기구가 백제의 압력으로 해체되고 성격이 변모되면서 가야의 멸망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으며, 신라가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연맹 전체를 병합하는 562년의 시점에는 임나 관련의 모든 논의가 끝나고 말았다. 안라왜신관이라는 기구가 가야사 속에 원래부터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존재를 시간적·공간적으로 확대시키거나 그 성격을 과장되게 해석하는 것은 이미 역사가 아닌 이념의 차원에서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末松保和, 1956 <<任那興亡史>>(再版) 吉川弘文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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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鉉球, 1985 <<大和政權の對外關係硏究>> 吉川弘文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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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鉉球, 1993 <<任那日本府硏究>> 一潮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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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熙眞, 1996 <<4-5세기 加耶를 중심으로 본 국제관계의 展開>>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鈴木英夫, 1996 <<古代の倭國と朝鮮諸國>> 靑木書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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